2천년 전 세워진 18층 건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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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세워진 18층 건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문화유산 애호가가 세계유산 탐방 중 만난 유럽의 세계유산을 건축 양식에 집중하여 소개합니다. <기자말> [박배민 기자] ⓒ 박배민§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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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세워진 18층 건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박배민2025. 3. 1. 11:00
문화유산 애호가가 세계유산 탐방 중 만난 유럽의 세계유산을 건축 양식에 집중하여 소개합니다. <기자말>
[박배민 기자]

§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 국가 :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 유네스코 등재: 1980년 등재, 1990년 확장
§ 탐방일: 2025년 1월 30일(여행기간은 1월 29일~2월 11일)
§ 등재 기준: (ⅰ), (ⅱ), (ⅲ)(ⅳ), (ⅵ)
로마 역사 지구는 고대 로마 문명의 대표적 유산(기준 iii, iv), 서양 건축과 도시 계획의 원형(기준 ii, iv), 예술과 종교 중심지로서의 영향력(기준 i, vi) 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책을 펼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로마의 상징이자 문명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건축물, 콜로세움이다. 2,000년 동안 전쟁과 지진을 견디고, 약탈과 관광객들의 낙서를 버텨내며 '불사의 건축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하니 언젠가는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그렇게 대단해?'하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했다.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 콜로세움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비수기에는 비교적 한적해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난생 첫 유럽 여행의 목적지로 로마를 정했고, 마침내 내 버킷리스트였던 콜로세움 앞에 서게 되었다.
▲ 아래층에서 올려다 본 3층. 아치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
ⓒ 박배민 |
▲ 북쪽 '아니발디 가문 거리'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콜로세움. |
ⓒ 박배민 |
처음 본 순간, 믿기지 않았다. 책과 사진에서 수도 없이 봤지만 실물을 접하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시공간을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크기. 여기가 정말 2000년 전 사람들이 세운 곳이라고? 이걸 그 시기에 대체 어떻게? 내 눈앞에 서 있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 가장 높은 콜로세움의 4층의 높이는 현대 건물 18층에 달한다. |
ⓒ 박배민 |
'아, 이거 진짜 실존하는 거구나!'
책에서 수없이 봤던 그곳이 내 앞에 있었다. 가까이서 본 콜로세움의 질감은 고향 집 보수 공사를 하면서 본 것과 똑같았다. 누가 나를 두고 장난이라도 치는 거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질감 자체는 친숙하게 느껴졌다.
콜로세움의 얼굴, 외벽을 읽다
겉에서 보기에 콜로세움의 외벽은 연속된 아치 구조였다. 전체적으로 4층으로 이루어졌고, 1, 2, 3층은 층마다 80여 개의 아치가 반복되며, 4층은 막힌 벽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건축의 기본 요소인 기둥과 보의 형태도 보였다. 아치가 모든 무게를 지탱하는 콜로세움에 기둥과 보는 필요하지 않았다.
▲ 지하철 '콜로세오' 역 앞에서 바라 본 콜로세움 |
ⓒ 박배민 |
▲ 벽과 기둥 곳곳에 나있는 구멍들. 필자에겐 저 패턴에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일어난다. |
ⓒ 박배민 |
▲ 구멍의 크기가 성인 손바닥만하다. |
ⓒ 박배민 |
벽을 장식하던 장식물 등이 하나둘 뜯겨 가면서, 못이나 고정물이 박혀 있던 자리에는 빈 구멍만 남게 된 것이다.
아치와 콘크리트로 만든 무대... 이걸 어떻게 2천년 전에?
콜로세움은 그야말로 '아치의 정점'이라 불릴 만했다. 최대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2000년 전에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 통로에서 보이는 아치. 외벽에만 240개, 내부에 숨겨진 아치까지 계산하면 콜로세움에는 600~800여 개의 아치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박배민 |
▲ 콜로세움 내부의 수없이 많은 아치가 보인다. 콜로세움이 온전했을 당시에는 저 아치들 위에 관객석이 깔려 있었다. |
ⓒ 박배민 |
▲ 빨간 벽돌 안으로 거뭇거뭇하게 드러난 것이 로마식 콘크리트다. 가까이서 보면 맨눈으로는 현대의 그것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
ⓒ 박배민 |
여기에 아치 구조를 결합하면서, 로마 건축은 전례 없는 기술적 도약을 이루었다. 콘크리트와 아치의 교향곡이라 부를 만하다.
▲ 로마 제국의 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흉상. |
ⓒ CC BY-SA 3.0 |
▲ 대부분의 관객석이 훼손되어 사라졌지만 극히 일부분이 1층에 보존되어 있다. |
ⓒ 박배민 |
한 해 동안 세 명의 황제(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차례로 암살당하거나 처형되며, 로마 제국의 미래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평민 출신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강력한 리더십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승리하며 엄청난 전리품과 노예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콜로세움을 건설했다. 시민들에게 '황제의 은혜'를 과시하고, 대규모 유희를 통해 민심을 사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 콜로세움의 단면도. 높은 계급일수록 검투사 경기가 가장 잘 보이는 아래층에 앉을 수 있었다. (단면도는 위키백과 콜로세움 항목에서 가져왔으며, 프랑스어로 돼 있는 걸 내가 재디자인했다) |
ⓒ CC BY-SA 3.0 |
▲ 과거 '네로의 거대 청동상'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I로 만든 사진(GPT-Dall-E 로 제작). |
ⓒ 박배민(AI 생성) |
▲ 콜로세움을 찾은 관광객. 비수기인데도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
ⓒ 박배민 |
▲ 지금은 사라진 돈의문(서대문)의 현판. |
ⓒ 고궁박물관(공공누리 제1유형) |
내부 관람 시간이 1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게 원망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콜로세움 안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수천 년의 시간이 녹아 있는 이곳을, 단 한 시간 만에 보고 떠나야 한다니 아쉬웠다.
▲ 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 본 콜로세움. |
ⓒ 박배민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개인 채널(브런치 등)에도 실립니다. 참고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 Giuliana Coletta, 로마 - 가상복원, Archeolibri ※ 박인석, 건축 생산 양식 1, 마티 ※ 신상화, 로마, 청년사 ※ 양정무, 미술 이야기 2, 사회평론 ※ 임석재, 서양건축사, 북하우스 ※ 진경돈, 서양건축양식사, 국제 ※ 배은식, 로마 검투사의 일생,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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