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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세워진 18층 건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myinfo1030 2025. 3. 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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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세워진 18층 건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문화유산 애호가가 세계유산 탐방 중 만난 유럽의 세계유산을 건축 양식에 집중하여 소개합니다. <기자말> [박배민 기자] ⓒ 박배민§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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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세워진 18층 건물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박배민2025. 3. 1. 11:00

[해외 세계유산 탐방] 건축으로 읽는 권력, 로마 콜로세움의 이야기

문화유산 애호가가 세계유산 탐방 중 만난 유럽의 세계유산을 건축 양식에 집중하여 소개합니다. <기자말>

[박배민 기자]

ⓒ 박배민
§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 국가 :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 유네스코 등재: 1980년 등재, 1990년 확장
§ 탐방일: 2025년 1월 30일(여행기간은 1월 29일~2월 11일)

§ 등재 기준: (ⅰ), (ⅱ), (ⅲ)(ⅳ), (ⅵ)
로마 역사 지구는 고대 로마 문명의 대표적 유산(기준 iii, iv), 서양 건축과 도시 계획의 원형(기준 ii, iv), 예술과 종교 중심지로서의 영향력(기준 i, vi) 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책을 펼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로마의 상징이자 문명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건축물, 콜로세움이다. 2,000년 동안 전쟁과 지진을 견디고, 약탈과 관광객들의 낙서를 버텨내며 '불사의 건축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하니 언젠가는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그렇게 대단해?'하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했다.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 콜로세움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비수기에는 비교적 한적해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난생 첫 유럽 여행의 목적지로 로마를 정했고, 마침내 내 버킷리스트였던 콜로세움 앞에 서게 되었다.

동행인 한 명과 함께 찾은 로마, 지난 1월 30일의 일이다.
 
  아래층에서 올려다 본 3층. 아치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 박배민
 
  북쪽 '아니발디 가문 거리'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콜로세움.
ⓒ 박배민
우리는 숙소에서 나와 20분 정도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으며 로마 시내를 가로질렀다.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아니발디 가문 거리'에 들어서면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본 순간, 믿기지 않았다. 책과 사진에서 수도 없이 봤지만 실물을 접하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시공간을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크기. 여기가 정말 2000년 전 사람들이 세운 곳이라고? 이걸 그 시기에 대체 어떻게? 내 눈앞에 서 있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콜로세움의 외벽 높이는 48m. 아파트로 친다면 약 17~18층 정도 되는 높이다. 책에서도 잘 가늠되지 않았지만, 직접 그 앞에 서보니 또 다른 의미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장 높은 콜로세움의 4층의 높이는 현대 건물 18층에 달한다.
ⓒ 박배민
입구에서 보안 검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아치 통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이거 진짜 실존하는 거구나!'

책에서 수없이 봤던 그곳이 내 앞에 있었다. 가까이서 본 콜로세움의 질감은 고향 집 보수 공사를 하면서 본 것과 똑같았다. 누가 나를 두고 장난이라도 치는 거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질감 자체는 친숙하게 느껴졌다.

콜로세움의 얼굴, 외벽을 읽다

겉에서 보기에 콜로세움의 외벽은 연속된 아치 구조였다. 전체적으로 4층으로 이루어졌고, 1, 2, 3층은 층마다 80여 개의 아치가 반복되며, 4층은 막힌 벽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건축의 기본 요소인 기둥과 보의 형태도 보였다. 아치가 모든 무게를 지탱하는 콜로세움에 기둥과 보는 필요하지 않았다.

<미술 이야기 2>를 쓴 양정무 교수는 이를 두고 "로마인들이 기둥과 보를 이제 장식적인 요소로 다루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실용성을 갖추면서도 본질은 장식적인 요소로 살린 것이다.
 
  지하철 '콜로세오' 역 앞에서 바라 본 콜로세움
ⓒ 박배민
이제 벽면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아치 사이 벽에는 기둥처럼 보이게 장식해 두었고, 각층 기둥머리마다 서로 다른 양식으로 꾸몄다. 1층을 보면 단순하고 강인한 도리아식이 보인다. 2층으로 시선을 올리면, 부드러운 곡선미가 가미된 이오니아식. 마지막으로 3층에서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코린토식이 자리 잡고 있다. 층마다 점점 더 장식성이 강해지는 게 보이는가?
콜로세움은 위에서 보면 타원형이다. 긴 지름이 188m, 짧은 지름이 156m. 그저 숫자로만 봤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실제로 이 공간 안에 서보니 그 거대한 스케일이 온몸으로 와닿았다. 알기 쉽게 비교하자면, 서울 광화문에서 근정문 앞까지가 190m쯤 된다.
 
  벽과 기둥 곳곳에 나있는 구멍들. 필자에겐 저 패턴에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일어난다.
ⓒ 박배민
그리고 실물로 마주한 콜로세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상치 못했던 흔적들이었다. 네모난 구멍, 총알 자국처럼 움푹 팬 흔적이 벽 곳곳을 뒤덮고 있었다.
책 속에서 볼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흔적들이었다. 자꾸 보고 있으니 환 공포증이 이는 것처럼 몸이 근질거렸다. 저 깊숙한 구멍들이 징그럽게 느껴지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
 
  구멍의 크기가 성인 손바닥만하다.
ⓒ 박배민
사실 이 구멍들은 과거 로마가 쇠퇴하면서 생긴 흔적이다. 한때 콜로세움은 황제와 시민들의 환호로 가득 찼지만, 로마 몰락 이후에는 창고나 작업장, 예배당 등으로 사용되면서 건축 자재를 뜯기는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벽을 장식하던 장식물 등이 하나둘 뜯겨 가면서, 못이나 고정물이 박혀 있던 자리에는 빈 구멍만 남게 된 것이다.

아치와 콘크리트로 만든 무대... 이걸 어떻게 2천년 전에?

콜로세움은 그야말로 '아치의 정점'이라 불릴 만했다. 최대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2000년 전에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감이 잘 오지 않는가? 잠실 주경기장의 좌석 수가 3만 석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엄청난 건설력이다. 이제 통로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도 아치가 있고, 위쪽에도 아치가 있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아치가 이어진다.
 
  통로에서 보이는 아치. 외벽에만 240개, 내부에 숨겨진 아치까지 계산하면 콜로세움에는 600~800여 개의 아치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박배민
그러나 아치는 로마에서 시작된 기술이 아니었다. 로마는 신기술을 받아들여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을 뿐이다. 아치 구조의 원류는 2500년 전 인더스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인석 교수는 <건축 생산 양식 1>에서, 인더스 문명에서 시작된 아치 기술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를 거쳐 로마로 전파되었고, 로마는 이를 실용적으로 변형하고 대규모 건축에 적용했다고 설명한다.
 
  콜로세움 내부의 수없이 많은 아치가 보인다. 콜로세움이 온전했을 당시에는 저 아치들 위에 관객석이 깔려 있었다.
ⓒ 박배민
아치 구조의 큰 장점은 무게를 분산시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전과 콜로세움을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그리스 신전은 빽빽한 기둥이 압도적인 경외감을 자아내지만, 콜로세움은 아치를 활용해 훨씬 넓고 개방감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콜로세움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기둥과 기둥 사이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넓게 느껴진다.
 
  빨간 벽돌 안으로 거뭇거뭇하게 드러난 것이 로마식 콘크리트다. 가까이서 보면 맨눈으로는 현대의 그것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 박배민
로마인들은 이미 2000년 전에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티볼리에서 가져온 석회, 화산재, 모래, 자갈을 혼합하여 만든 이 로마식 콘크리트(Opus Caementicium)는 거대한 구조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아치 구조를 결합하면서, 로마 건축은 전례 없는 기술적 도약을 이루었다. 콘크리트와 아치의 교향곡이라 부를 만하다.

베스파시아누스, 권력을 건축하다
 
  로마 제국의 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흉상.
ⓒ CC BY-SA 3.0
콜로세움의 건설은 75년부터 80년까지 5년간 공사를 진행하며, 1만 50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경기장을 세운 이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년)였다.
그의 풀네임은 'Titus Flavius Vespasianus'. 그래서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도 그의 왕조 이름을 따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다.
 
  대부분의 관객석이 훼손되어 사라졌지만 극히 일부분이 1층에 보존되어 있다.
ⓒ 박배민
콜로세움은 단순한 오락시설이 아니라 황제의 정치 전략이 담긴 산물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즉위하기 전, 로마는 혼란의 시대를 겪고 있었다.

한 해 동안 세 명의 황제(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차례로 암살당하거나 처형되며, 로마 제국의 미래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평민 출신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강력한 리더십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승리하며 엄청난 전리품과 노예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콜로세움을 건설했다. 시민들에게 '황제의 은혜'를 과시하고, 대규모 유희를 통해 민심을 사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사라진 이름, 남겨진 별명
 
  콜로세움의 단면도. 높은 계급일수록 검투사 경기가 가장 잘 보이는 아래층에 앉을 수 있었다. (단면도는 위키백과 콜로세움 항목에서 가져왔으며, 프랑스어로 돼 있는 걸 내가 재디자인했다)
ⓒ CC BY-SA 3.0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라는 본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 경기장을 'Colosseo(콜로쎄오, 영어식: 콜로세움)'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유력한 설 중 하나는 경기장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이 경기장의 공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었다.
 
  과거 '네로의 거대 청동상'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I로 만든 사진(GPT-Dall-E 로 제작).
ⓒ 박배민(AI 생성)
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이름 대신, '네로의 거대한 동상(Colossus of Nero) 옆에 있는 경기장'이라는 의미로 'Colossus(콜로서스)'라 불렀다. 'Colossus'는 라틴어로 '거대하다'라는 뜻인데, 결국 '거대한 건물'이라는 별칭이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콜로세움을 찾은 관광객. 비수기인데도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 박배민
이런 명칭 변화는 우리도 경험한 적이 있다. 한양도성의 사대문을 떠올려보자. 공식 명칭은 숭례문, 돈의문이지만, 우리는 남대문과 서대문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정식 이름보다 사람들이 부르기 편한 이름이 그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수천 년 전 로마에서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돈의문(서대문)의 현판.
ⓒ 고궁박물관(공공누리 제1유형)
언젠가 다시 이곳에 서서

내부 관람 시간이 1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게 원망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콜로세움 안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수천 년의 시간이 녹아 있는 이곳을, 단 한 시간 만에 보고 떠나야 한다니 아쉬웠다.

벽을 손끝으로 한 번 더 훑어보았다. 차갑고 거친 표면이 손에 닿았다. 저 벽, 저 아치, 저 흔적들.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꼭 다시 와야겠다. 아쉬운 발걸음을 떼며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서서, 오늘의 나를 떠올릴 날이 오기를.
 
  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 본 콜로세움.
ⓒ 박배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개인 채널(브런치 등)에도 실립니다. 참고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 Giuliana Coletta, 로마 - 가상복원, Archeolibri ※ 박인석, 건축 생산 양식 1, 마티 ※ 신상화, 로마, 청년사 ※ 양정무, 미술 이야기 2, 사회평론 ※ 임석재, 서양건축사, 북하우스 ※ 진경돈, 서양건축양식사, 국제 ※ 배은식, 로마 검투사의 일생,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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