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보안사 터 미술관에 거대 해골 100개가 쌓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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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보안사 터 미술관에 거대 해골 100개가 쌓인 까닭은
"매스(Mass): 특별한 모양이나 배열이 없는 많은 양 운집하다 물체의 질량 미사(종교의식)" 각각 높이 1.2m에 달하는 거대한 두개골 100개로 이뤄진 작품 ‘매스’(2016~17)에 대해 론 뮤익(67)은 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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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보안사 터 미술관에 거대 해골 100개가 쌓인 까닭은
권근영2025. 4. 12. 05:00

"매스(Mass):
특별한 모양이나 배열이 없는 많은 양
운집하다
물체의 질량
미사(종교의식)"
각각 높이 1.2m에 달하는 거대한 두개골 100개로 이뤄진 작품 ‘매스’(2016~17)에 대해 론 뮤익(67)은 이 네 줄짜리 메모를 남겼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전시실, 층고 14m 전시장에 쏟아져 내릴 듯 대형 해골이 쌓였다. 천장 가까이 난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대부분 전시장이 지하에 자리 잡은 이곳이 원래 12ㆍ12 군사반란의 주 무대인 보안사(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였음을 실감하게 한다. 국립현대 서울관은 2013년 보안사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이번 전시의 협력 큐레이터로 론 뮤익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찰리 클라크는 “작가는 파리 카타콤(지하 묘지)을 방문했을 때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쌓여 있던 산더미 같은 뼈와 그 뼈들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봤다. 그 강렬한 경험에서 ‘매스’가 나왔다”며 “설치될 때마다 모습을 달리했는데, 이렇게 세로로 쌓아 올리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체 조각으로 이름난 론 뮤익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호주 출신의 뮤익은 어린이 TV쇼의 특수효과 제작자로 일했다.독일 국적의 부모도 장난감 제조업자였다. 뮤익은 화가 파울라 헤구와 협업한 작품을 1996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선보이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 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데이미언 허스트 등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세상에 알린 전시다. 여기 뮤익은 사망한 아버지의 모습을 절반 크기로 재현한 작품 '죽은 아빠(Dead Dad)'를 출품했다.

30년 가까이 활동했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총 48점뿐이다. 인체 모형을 크거나 작게, 오랫동안 공들여 제작한다. 조각이지만 에디션 없이 한 점씩만 만든다. 뮤익의 아시아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시기별 주요작 10점을 모아 소개한다.
전시장에서 맨 처음 만나는 작품은 '마스크Ⅱ'(2002)다. 실제 얼굴 크기의 네 배로, 수염 자국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한 자소상이다. 모로 누워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감은 얼굴이다. 현실에서는 스스로 직접 볼 수 없는 작가 자신의 잠든 모습이다. 살아 있는 듯하지만 뒤로 돌아가 보면 텅 비어 있어 제목 그대로 '껍데기'처럼 보인다. 런던의 개인 소장가에게 빌려온 이 작품은 2021년 리움미술관 재개관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가로 6m 50㎝ 크기로 이불을 덮은 채 침대에 누운 여성을 재현한 '침대에서'(2005) 역시 거대함으로 압도한다. 잠에서 막 깨어난 걸까, 잠 못 이루는 걸까? 궁금증해 하며 다가가도 눈을 맞출 수 없게 먼 곳을 보고 있는 여인상이다.
그의 인물상은 실제보다 크거나 작다. 꿈이나 신화 속 인물처럼 비현실적인 장면도 있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처럼 사실적인 모습도 있다. 식탁 위 암탉과 눈을 맞추고 있는 '치킨/맨'(2019)의 대치 상태는 조각으로 정지된 채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팬티 바람 노인의 늘어진 뱃살과 북실북실한 솜털, 놀라 고개를 빳빳이 쳐든 닭이 기묘한 사실감을 더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를 위해 주문 제작된 이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뉴질랜드 밖으로 반출됐다.

현대판 성모자상이라 할 '쇼핑하는 여인'(2013)도 그렇다. 양손에 묵직한 비닐봉지를 든 여인이 아기띠로 안은 아기를 외투 속에 꽁꽁 싸맸다. 봉지엔 존슨앤드존슨 베이비 파우더나 도브 바디샤워, 이유식 병조림 등 아기를 먹이고 씻길 공산품이 그득하다. 아기는 간절히 엄마와 눈을 맞추려 하지만 피곤에 절은 엄마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때 왜 아기에게 눈 한 번 맞춰주지 못했을까''내 엄마도 저렇게 힘들었겠지' 등 실물보다 작은 이 조각이 아는 사람인 양 공감을 부른다.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젊은 연인'(2013)은 뒷모습까지 봐야 다 봤다고 할 수 있다. 뒤로 돌아가 보면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억지로 잡아끄는 듯하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그의 조각은 행동으로, 세부 묘사로 많은 말을 암시하며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는다.
25년간 뮤익의 작업 과정을 기록해 온 고티에 드블롱드의 사진과 영상도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48분짜리 영상 '스틸 라이프: 작업하는 론 뮤익'은 작가의 손길이 반복되면서 인물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인공조명이나 음향 없이 작업실의 라디오 소리, 바깥의 새 소리나 개 짖는 소리만 간혹 들리는 침묵의 영화다.

전시는 2005년부터 뮤익을 지원해 온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 기획했다. 까르띠에 재단을 비롯한 6개국 기관과 개인 소장가에게서 작품을 모았다.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호주에서 온 '매스'만 해도 크레이트(작품 운송용 나무상자) 100개에 각 60㎏ 해골 작품이 들어가 있어 선박으로만 운송할 수 있었다”며 "배로 오는 두 달 사이에 다른 곳과 전시 일정이 겹쳐서도 안 됐고, 그 기간 안에 후원이나 재정적 뒷받침이 가능해야 했다. 설치에만 또 2주가 걸렸다. 많은 행운이 따라야 했던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일본의 모리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7월 13일까지, 성인 5000원.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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