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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조카와 애 낳은 막장 삼촌···근친상간이 부른 나비효과가 유럽 흔들다[히코노미]
[히코노미-15] 고고한 산. 육중한 사내들이 비오듯 땀을 쏟으며 한발짝 한발짝 정상을 향해 나아 갑니다. 몇 날 며칠 이어진 고난의 행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뚱이. 이들이 발걸음을 뗄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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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조카와 애 낳은 막장 삼촌···근친상간이 부른 나비효과가 유럽 흔들다[히코노미]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2025. 2. 22. 08:15
[히코노미-15] 고고한 산. 육중한 사내들이 비오듯 땀을 쏟으며 한발짝 한발짝 정상을 향해 나아 갑니다. 몇 날 며칠 이어진 고난의 행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뚱이. 이들이 발걸음을 뗄 수 있었던 건, 저 산을 오르면 진귀한 보물이 가득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망망대해 대서양마저 건너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이들. 태산이 높다 한들 대수겠습니까. 그토록 찾아 헤맨 보물이 눈앞에 있는데.

엄청난 은화가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으로 전해집니다. ‘제국’ 스페인은 이제 지구의 최강자가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신은 그러나 스페인의 뱃머리를 ‘망국의 길’로 돌렸습니다. 은(銀)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면서였습니다. 스페인이 망국으로 빠진 역사는 부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1492년. 세계가 또 다른 세계를 만난 해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마침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거인의 뒤를 따라 수많은 사내들이 배에 올라탔습니다. 신대륙에 황금빛 도시가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뒤였습니다.
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빛 가루를 뒤덮고 있고, 금이 지천에 널려있는 황금의 도시. 야망으로 가득한 사내들의 가슴이 두근거리기에 충분합니다. 잉카를 무너뜨리고 금의환향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4년 왕에게 황금을 조공합니다.

인도로 가는 새길을 발견하겠다는 콜럼버스를 비웃던 사람들은 모두 합죽이가 되었습니다. 제2의 콜럼버스가 될 수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엔트라다’(Entrada·탐험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의 시작이었습니다.
도전은 멈출줄 몰랐습니다. 기어이 일련의 사내들이 안데스 산맥을 오른 끝에 은 광산을 발견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볼리비아 포토시였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 산에 ‘세로 리코’라는 애칭을 붙였습니다. ‘부유한 산’이라는 의미였지요.

스페인에는 그야말로 금은보화가 넘쳐났습니다. 멕시코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리고 찾은 황금과 포토시에서 채굴한 은화가 스페인에 넘실댑니다. 은의 도시 포토시는 사람과 물산으로 가득합니다.
어느새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합니다. 스페인이 이곳에 은화 주조소를 건립합니다. 제국에 통용되는 은화를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신의 선물’인 은화는 응당 신을 위해 써야 했습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개신교도들을 혼내주는 일이었습니다. 교황을 배신하고, 이교도적 믿음을 가진 존재들. 그들을 쓸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카를 5세 인생의 제 1목적이었지요.

넘치는 은화는 시민을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용병과 군인에게 흘러갑니다. 끊임없는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지급할 은화가 부족해지자, 왕은 포토시 관리들을 더욱 채근합니다. 더 많은 은화를 채굴하라고, 더 많은 돈을 본국에 바치라고.
돈이 쓰이는 속도를 은화 채굴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자 푸거라는 독일인 은행가에게 은 광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경제위기에도 펠리페2세의 국정 운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국가의 맏형으로서 유럽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대내적으로는 가톨릭적 권위를 세우기 위한 과시용 예술에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모두 ‘고비용’의 정치 행위였지요.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이라는 걸출한 화가들이 스페인 회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황금시대(Siglo de oro)를 맞은 예술은 반짝거렸지만, 경제는 금은보화의 독에 취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직접 땅을 경작하고, 추수하고, 더 많은 생산을 위한 고민은 사라집니다. 신대륙의 은화가 스페인을 든든하게 받쳐준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민간경제에도 서서히 청구서가 도착합니다. 실물경제에 기반하지 않은 막대한 화폐는 재앙에 가깝습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포토시 은 광산을 발견한 이후 약 100년에 걸쳐 물가는 약 45배 이상 오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적국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달랐습니다. 두 나라를 지탱하는 건 왕도 은화도 아니었습니다. 상인과 무역업자였습니다. 시장과 금융기관이었습니다. 1588년 잉글랜드 함선이 무적함대를 무찌릅니다. 1648년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합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은 여명 속에서 저물고 있었습니다.

1665년 즉위한 국왕 카를로스 2세는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했습니다. 근친혼의 영향으로 턱이 지나치게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병치레가 잦은 만큼 국정 운영은 언제나 공백상태였습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었지만 카를로스 2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생식 능력도 부족했던 탓에 갖은 애를 쓰고도 후사를 남기지 못합니다. 1700년 11월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납니다. 39세의 나이였습니다.
이듬해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필두로 전쟁이 벌어집니다. 스페인을 차지하기 위한 대혈투,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었습니다. 이때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군대가 승리를 거두고, 자신의 손자를 스페인 왕좌에 앉혔습니다. 지금도 스페인 왕가가 프랑스계인 ‘부르봉’(스페인어로는 보르본) 왕조인 이유입니다.

영국을 선두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상업·무역·산업혁명을 토대로 만든 질서였습니다. 스페인은 여전히 낡은 농업에만 의존하는 후진국이었습니다.

제국이 무너진 건 역설적으로 모두가 축복이라고 했던 은광의 발견이었습니다. 은광과 금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스페인은 제법 괜찮은 역사를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페인판 ‘자원의 저주였습니다.

다시 국부를 생각합니다. 경제란 무엇입니까. 자식에게 밥을 먹이겠다는 가난한 부모의 숭고함입니다. 늠름한 남자가 되어 괜찮은 처자를 아내로 맞겠다는 사내의 욕망입니다. 나라에 기대지 않고 살겠다는 시민의 자존심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경제 혁신의 밀알이 되어 국부를 이룹니다.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근사한 것들에서 저는 앞선 세대의 땀냄새를 맡습니다. 선혈 가득한 핏자국을 떠올립니다.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피와 땀은 제가 흘려야 했을 것입니다. 자원하나 없는 척박한 이 땅을 부국으로, 또 선진국으로 일궈낸 그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ㅇ스페인이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의 점령을 시작으로 수 많은 은화가 본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ㅇ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넘치는 은화를 믿고 갖은 종교전쟁을 벌이면서 산업 육성에 힘쓰지 않았다.
ㅇ엄청나게 풀려버린 화폐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서 서민의 삶은 팍팍해졌다.
ㅇ‘은의 저주’가 스페인을 덮친 셈이다. 국부는 언제나 인간의 땀과 노력으로부터 나왔다.
<참고문헌>
ㅇ알바레즈 노갈 외, 더 라이즈 앤 폴 오브 스페인(1270-1850), 더 이코노믹 히스토리 리뷰 66,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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